문화한강 수상소감은 한 편의 수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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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너봄
추천 69 조회 3,861 댓글
글번호 202412110099888327 | 2024-12-11 10:56
IP 122.35.*.138
가 가
폐하, 왕실 전하, 신사 숙녀 여러분.
제가 여덟 살이던 날을 기억합니다. 오후 주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자 20여 명의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처마 밑에 또 다른 작은 군중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제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 이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글을 읽고 쓰면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니 이 경이로운 순간이 몇 번이고 되살아났습니다.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 속 깊이로 들어가 또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실에 매달아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 그 실을 믿고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이러한 질문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져온 질문이며,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는 언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는 언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지니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문학을 위한 이 상이 주는 의미를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8살 때 저런 감성을 가졌다니
정말 타고난 문학적 재능을
지녔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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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4개
행복12024-12-11 10:58IP: 59.13.*.31
댓글
참 레벨이 다르네요. 난 맨날 컴퓨터 거북목에 무미건조한 보고서나 쓰고 있고
강건너봄2024-12-11 11:01IP: 122.35.*.138
댓글
행복1[댓글수정]ㅎㅎ 그렇지만 뭐 그런 행위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죠
dreamcast2024-12-11 11:00IP: 121.160.*.109
댓글
그냥 타고난 재능?,운명대로 사는 것...
Got_him2024-12-11 11:00IP: 59.31.*.145
댓글
주산 ㅋㅋ 추억 돋네요
강건너봄2024-12-11 11:07IP: 122.35.*.138
댓글
Got_him70년대 말이니까 그때는 주산대회도 주산학원도 많았을 것 같네요
겨울싫다2024-12-11 11:00IP: 112.158.*.121
댓글
재능이죠 와...
유종애미2024-12-11 11:01IP: 211.212.*.50
댓글
8살에 1인칭 시점을ㅋㅋㅋ 떡잎부터 남다른
강건너봄2024-12-11 11:09IP: 122.35.*.138
댓글
유종애미[댓글수정]열 살 때 쓴 시도 있던데요 "사랑이란 가슴과 가슴을
이어주는 금실"이라고
암튼 예술방면은 무엇보다 타고난 재능인가 봅니다
ajp6522024-12-11 11:02IP: 174.110.*.225
댓글
악플이랑 싸우면서 쌓은 내공은 결코 글솜씨가 아님을 알겠습니다.
키케로2024-12-11 11:03IP: 125.140.*.141
댓글
레벨이 다르네요
bonde2024-12-11 11:06IP: 106.244.*.116
댓글
덕분에 바닥에서 구르던 나의 내면이 잠깐 높은 철학의 세계를 들렀다가 다시 내려갑니다
1대간9정맥2024-12-11 11:12IP: 39.7.*.93
댓글
정말 필력 대단하네요
시네마테크2024-12-11 11:29IP: 27.100.*.60
댓글
품격있는 글이네요. 참고로 수상소감이 중요한게 노벨문학상은 수상소감이 이런저런 책(해외)에 많이 실림 ㅋㅋ
강건너봄2024-12-11 11:35IP: 122.35.*.138
댓글
시네마테크아 그렇군요 이번
한강 작가의 소감 또한 하나의 작품같네요
自由自在2024-12-11 11:50IP: 210.98.*.94
댓글
대부분 타고 납니다.
환경은 그것을 죽이거나 살리고 키우거나 억누르는 거죠.
프로틴루팡2024-12-11 16:20IP: 112.168.*.13
댓글
불페너 평균 수준은 스시녀랑 잭스해보신분 있나요? 그정도임
칠짜기본2024-12-11 16:29IP: 175.215.*.59
댓글
우렁찬 빗소리, 흙냄새, 축축하고 눅눅한 습기, 옆사람의 살냄새가 나는것같네요 ㄷ ㄷ
응아니야ㅋ2024-12-11 16:43IP: 180.65.*.119
댓글
아버지도 소설가로 알고 있음 집안 내력이 남다름
좀비야구2024-12-11 16:43IP: 110.35.*.50
댓글
본문글만 봐도 필력이 느껴지네요
헤이스팅스2024-12-11 16:49IP: 211.234.*.154
댓글
생명파괴에 반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말로 문학의 본질을 한마디로 정리해주네요
주코프2024-12-11 16:53IP: 14.43.*.129
댓글
멋진 글이네요. "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술고기롯데2024-12-11 16:57IP: 59.20.*.146
댓글
먼 말이고......
BlackCat2024-12-11 17:04IP: 1.248.*.29
댓글
한강 수상 소감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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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날을 기억합니다" 노벨상 연회서 마이크 앞에 선 한강 - mbn news
https://www.youtube.com/watch?v=EWW-bqY6v18
질풍같은용2024-12-11 17:13IP: 211.228.*.240
댓글
진짜 레베루가 다르네요... 캬..
kanchos2024-12-11 17:40IP: 118.235.*.107
댓글
저 어린 나이에 저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저런 걸 자각하다니 굉장히 섬세하고 놀랍기도 하네요. 느꼈던 걸 표현하는 것도 대단하고요. 역시 예술천재는 일반인과 다르다고 느낍니다.
색살검비2024-12-11 17:42IP: 115.94.*.74
댓글
정말 뭐랄까...
쩌내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아이다2024-12-11 17:46IP: 59.23.*.147
댓글
멋지다
호미불닭발2024-12-11 18:17IP: 223.38.*.84
댓글
영어소감은 본인이 영어로 직접 적은건가여 아님 한글로 쓰고 글을 누가 영어로 적어준건가여?
강건너봄2024-12-11 18:19IP: 122.35.*.138
댓글
호미불닭발[댓글수정]위의 전문은 기자가 한강의 영어 소감을 듣고 번역한 것입니다
아마도 소감문 영어 원문은 분인이 한국어로 쓰고
번역가의 영역을 거친 거겠죠
다만 한강 작가도 영어에 능통하니 번역가와 같이 조율은 했을 듯 합니다
요라로2024-12-11 18:18IP: 211.246.*.28
댓글
저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억 상금이 부럽다면서 악플다는 소위 ‘현역 작가’도 있고.. 사람들 사는 모습이 제각각 ㅉㅉ
전원책2024-12-11 18:21IP: 211.234.*.135
댓글
저마다의 '나'
이 부분은 전율이네요
강건너봄2024-12-11 18:26IP: 122.35.*.138
댓글
전원책8살의 어린 시절 처마 밑에서의 사소한 광경 하나를 이렇게
소환해서 이렇게 심오한 수상의 글로 빚어내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이 나오네요
문헌검색2024-12-11 18:35IP: 223.39.*.119
댓글
8살때의 기억을 8살때라면 저렇게 표현 못했겠조. 성인이 되어서 그 기억을 다시 표현.
강건너봄2024-12-11 18:42IP: 122.35.*.138
댓글
문헌검색그건 그렇겠죠
BLACKEDRAW2024-12-11 19:35IP: 116.33.*.186
댓글
와우. 멋지다. 이것이 노벨문학상 작가의 수상소감인가.ㄷㄷㄷ
닥터스트레인지2024-12-11 19:41IP: 221.168.*.211
댓글
하지만 몇몇 어그로에겐 운좋은 야설작가 취급이라죠.
기본적으로 사유의 깊이와 그걸 표현해내는 어휘가 차원이 다르네요
코인2024-12-11 19:47IP: 112.172.*.153
댓글
와 개쩐다
쎄이지762024-12-11 20:00IP: 182.216.*.92
댓글
와 소름돋네요. 문학에 대한 철학적 고찰. 품격이 느껴짐
주딩이2024-12-11 20:10IP: 39.7.*.28
댓글
한강 작가 소설은 어려웠는데 이 강연은 좋네요
Branyan2024-12-11 20:15IP: 14.32.*.122
댓글
재능은 재능이네요
글이 말하는 장면이 머리속에 떠오르네요
CheatKeys2024-12-11 20:27IP: 211.44.*.38
댓글
멋지네요
쿼바디스2024-12-11 20:40IP: 221.152.*.193
댓글
멋진 수상소감이네요.
한강 작가 축하드립니다.
알랙스카프2024-12-11 20:56IP: 49.142.*.28
댓글
삶이 마냥 고독하고 비루하지 않은 것은 이런 명문이나 인간의 존엄 같은 것을 간혹 목도하게 되었을때 명치 끝이 아릿해지는 기적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참 보석같은 작가입니다.
수렵채집인2024-12-11 21:08IP: 117.111.*.73
댓글
8살때 저걸 느낀다고?ㅎㄷㄷ 대단하네요
댓글4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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